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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특급' 박찬호(38)가 20일 한화와 1년간 연봉 2400만원에 입단 계약을 체결했다. 프로야구 최저연봉을 받는 대신 총액 6억 원의 야구발전 기금을 마련했다. 한국야구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박찬호의 진정성이 제대로 입증됐다.
박찬호는 지난 19일 구단과 첫 만남에서 연봉계약과 관련한 모든 것을 구단에 위임했다. 연봉 및 옵션 전액을 박찬호가 수령하지 않고, 구단이 유소년 및 아마야구 발전을 위해 기부하기로 했다. 구단은 박찬호의 뜻을 감안해 예정금액을 최대한 확대하여 확정치(4억 원)와 옵션(2억 원)을 포함한 총액 6억 원 범위 내에서 기부하기로 했다.
1973년 충남 공주 태생으로 중동초-공주중-공주고를 거친 박찬호는 한양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4년 1월 LA 다저스와 계약하며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올랐다. 메이저리그 17년 통산 476경기 1993이닝 124승98패 평균자책점 4.36을 기록했다. 특히 124승은 아시아 출신 투수 최다승 기록이다.
17년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친 박찬호는 올해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에서 1년을 뛰었다. 7경기에서 1승5패 평균자책점 4.29를 기록한 뒤 2군에서 시즌을 마감했다. 시즌 중반부터 한국프로야구 복귀를 희망했고 한화가 그의 특별법 통과를 위해 움직였다.
지난 13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를 통해 박찬호가 내년 시즌부터 국내에서 뛸 수 있도록 허가됐고, 그에 대한 지명권을 2007년 해외파 특별지명에서 지명권이 없었던 한화에게 주어졌다. 19일 첫 공식 만남에서 박찬호가 백지위임 의사를 밝히며 일사천리로 입단이 성사됐다.
이로써 프랜차이즈 스타 김태균을 역대 최고연봉 15억원에 복귀시킨 한화는 당대 최고의 스타 박찬호까지 데려오며 화려한 스토브리그의 정점을 찍었다. 박찬호도 18년간의 외길 인생을 뒤로하고 한국프로야구에서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됐다.
- OSEN
박찬호는 지난 19일 구단과 첫 만남에서 연봉계약과 관련한 모든 것을 구단에 위임했다. 연봉 및 옵션 전액을 박찬호가 수령하지 않고, 구단이 유소년 및 아마야구 발전을 위해 기부하기로 했다. 구단은 박찬호의 뜻을 감안해 예정금액을 최대한 확대하여 확정치(4억 원)와 옵션(2억 원)을 포함한 총액 6억 원 범위 내에서 기부하기로 했다.
1973년 충남 공주 태생으로 중동초-공주중-공주고를 거친 박찬호는 한양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4년 1월 LA 다저스와 계약하며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올랐다. 메이저리그 17년 통산 476경기 1993이닝 124승98패 평균자책점 4.36을 기록했다. 특히 124승은 아시아 출신 투수 최다승 기록이다.
17년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친 박찬호는 올해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에서 1년을 뛰었다. 7경기에서 1승5패 평균자책점 4.29를 기록한 뒤 2군에서 시즌을 마감했다. 시즌 중반부터 한국프로야구 복귀를 희망했고 한화가 그의 특별법 통과를 위해 움직였다.
지난 13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를 통해 박찬호가 내년 시즌부터 국내에서 뛸 수 있도록 허가됐고, 그에 대한 지명권을 2007년 해외파 특별지명에서 지명권이 없었던 한화에게 주어졌다. 19일 첫 공식 만남에서 박찬호가 백지위임 의사를 밝히며 일사천리로 입단이 성사됐다.
이로써 프랜차이즈 스타 김태균을 역대 최고연봉 15억원에 복귀시킨 한화는 당대 최고의 스타 박찬호까지 데려오며 화려한 스토브리그의 정점을 찍었다. 박찬호도 18년간의 외길 인생을 뒤로하고 한국프로야구에서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됐다.
- OSEN
이런 사람이었군요 박찬호란 사람은,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이라면 이처럼 놀랍지도 않았겠지만 자신의 평생을 담았던 야구라는 스포츠에 이토록 헌신하고 희생하며 열정을 불태우는이가 또 있을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20~30여억의 연봉을 포기하고 10억정도의 연봉을 받으며 돌아온 이승엽 선수도 참 대단하고 그의 열정에도 박수를 보내는 바이지만 무언가 한발짝 앞서가는 박찬호란 사람은 참으로 대단하다란 말밖에 할수 가 없습니다.
6억이란 돈이 대다수의 국민들에게는 매우 큰돈이고 박찬호에게도 6억이란 돈이 절대 작은돈이 아닐것이 분명할 것입니다. 우리 수중에 1000만원이 있더라도 100만원 기부하는게 얼마나 어려운 것 인지를, 아니 10만원이 있을때 만원을 떼어 주는것도 쉽지가 않은일임을 경험해본 사람들이라면 그의 결정에 진심어린 박수를 보내고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2011년을 마무리 하는 시점에서 이정도의 기록은 개인 블로그에 정리해 놓지 않는다면 후회가 될만한 좋은 기사 이기 때문에 아침 출근함과 동시에 좋은 기사를 나누게 됩니다.
2011년 대한민국은 참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2011년의 대표 키워드는 어떤게 있을까요,,^^
나는꼼수다, MB, 한미 FTA, 나는가수다, 오세훈, 박원순, 나경원, 김장훈, 독도, 박찬호, 통합 민주.. 더 나가면 정치 이야기가 될듯해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이야기 하고 ^^ 박찬호의 이름이 2011년 역사의 한 장에 기록되는 한 순간을 저도 제 블로그에 기록해 봅니다.
2012년 한해가 될지 몇해가 될지 모르지만 그 열정으로 몸건강히 한국 야구 발전에 힘써주기를 바래봅니다.
화이팅 박찬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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